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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철학 이야기

맹자가 말하는 인간의 선한 본성, 사단(四端)을 깨우는 법

맹자가 말하는 인간의 선한 본성, 사단(四端)을 깨우는 법

"나는 과연 착한 사람일까?", "뉴스에 나오는 끔찍한 사건들을 보면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고 악한 존재가 아닐까?" 이런 고민, 한 번쯤 해보신 적 없으신가요? 우리는 종종 자신의 이기적인 모습에 실망하고, 세상의 어두운 면을 보며 인간의 본성에 대해 깊은 회의에 빠지곤 합니다. 하지만 아주 오래전, "아니다. 인간의 본성은 원래 선하다"라고 확신에 차서 외친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맹자(孟子)입니다. 맹자는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선함의 씨앗'이 심어져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맹자가 말하는 우리 안의 선한 본성, '사단(四端)'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우리 일상 속에서 이 선한 마음을 깨우고 무럭무럭 키워나갈 수 있는지 가장 쉬운 말로 알아보겠습니다.

맹자가 말하는 인간의 선한 본성, 사단(四端)을 깨우는 법

맹자의 성선설, '인간은 원래 착하다'는 믿음

1. 성선설,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성선설(性善說)이라는 한자어 때문에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아주 간단한 이야기입니다. 마치 새로 산 스마트폰에 기본 운영체제(OS)가 설치되어 있듯이, 우리 인간도 태어날 때부터 '선함'이라는 기본 프로그램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물론 살아가면서 나쁜 환경이나 교육 때문에 악성 코드나 바이러스에 감염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본 운영체제 자체가 악하게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맹자는 우리의 마음에 먼지가 쌓이고 오염될 수는 있어도, 그 근본은 선하고 맑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2. 맹자가 말한 '착하다'의 진짜 의미

맹자가 '인간은 선하다'고 했을 때, 모든 사람이 성인군자처럼 완벽하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선해질 수 있는 가능성' 또는 '선함의 씨앗'을 100% 가지고 태어난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아주 작은 씨앗 하나가 거대한 나무가 될 모든 유전 정보를 품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당장 씨앗이 나무는 아니지만, 햇빛과 물만 잘 주면 거목으로 자랄 잠재력을 온전히 지니고 있죠. 이처럼 우리 모두는 위대한 선인(善人)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의 씨앗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것이 성선설의 핵심입니다.

3. 그렇다면 왜 악한 행동을 할까요?

여기서 바로 질문이 생깁니다. "본성이 선하다면, 세상에는 왜 저렇게 나쁜 사람들이 많을까요?" 맹자는 이에 대해 우리의 선한 본성이 '가려지거나'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맑고 깨끗한 샘물이 흙탕물에 의해 더러워지는 것과 같습니다. 샘물 자체가 흙탕물로 변한 것이 아니라, 외부의 오염물질 때문에 잠시 그 본모습을 잃어버린 것이죠. 즉, 이기심이나 욕심, 잘못된 환경이 우리의 선한 마음을 보지 못하게 가리고 있을 뿐, 그 본성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라고 본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잠든 선함의 증거, 사단(四端)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구체적인 증거 네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네 가지 단서'라는 뜻의 사단(四端)입니다.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이 네 가지 마음이 바로 우리 안의 선함을 증명하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1. 측은지심(惻隱之心), 불쌍히 여기는 마음

맹자가 든 가장 유명한 예시입니다. 만약 한 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아슬아슬한 순간을 목격한다면 어떨까요? 그 아이가 내 아이이든, 원수의 아이이든, 심지어 모르는 아이일지라도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깜짝 놀라며' 아이를 구하려는 마음이 들 것입니다. 이는 무언가 보상을 바라거나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계산된 행동이 아닙니다. 그저 불쌍하고 안타까운 상황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순수한 마음입니다. 길을 가다 다친 동물을 보고 마음이 아팠던 경험, 모두 한 번쯤 있지 않으신가요? 그것이 바로 측은지심입니다.

2. 수오지심(羞惡之心), 부끄러워하는 마음

수오지심은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羞), 타인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惡) 마음입니다. 예를 들어, 무심코 길에 쓰레기를 버렸다가 누군가 쳐다보는 것을 느끼고 얼굴이 화끈거렸던 경험이 있다면, 당신은 수오지심을 가진 것입니다. 또한, 누군가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보고 분노를 느끼는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 마음은 우리가 정의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나침반과 같습니다. 부끄러움을 안다는 것 자체가 우리 안에 올바름의 기준이 있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3. 사양지심(辭讓之心), 양보하는 마음

사양지심은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공경하는 마음입니다. 좁은 문을 들어갈 때 다른 사람에게 먼저 가라고 손짓하거나, 대중교통에서 어르신께 자리를 양보하는 행동이 모두 여기서 비롯됩니다. 내가 조금 불편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려는 마음, 이것이 바로 사양지심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모여 사회의 예의범절과 질서를 만듭니다. 아주 사소해 보이는 양보의 순간에, 우리는 인간의 선한 본성을 실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시비지심(是非之心),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

시비지심은 무엇이 옳고(是) 무엇이 그른지(非)를 분별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친구의 것을 빼앗는 것은 나쁘고, 친구를 도와주는 것은 착한 일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압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악역에 분노하고 주인공을 응원하는 것도 시비지심의 발현입니다. 이 마음은 우리가 지혜롭게 세상을 판단하고 올바른 길을 선택하도록 돕는 내면의 등대와도 같습니다.

잠자는 '사단'을 깨우고 키우는 방법

맹자는 사단이라는 선함의 씨앗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되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서 키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씨앗에 물과 햇빛을 주어 나무로 키우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 일상 속에서 사단을 키우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1. 작은 선한 감정 '알아차리기'

가장 첫 번째 단계는 내 마음속에서 아주 작게 싹트는 선한 감정을 놓치지 않고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배고픈 길고양이를 보고 마음이 쓰이거나(측은지심), 동료에게 퉁명스럽게 말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면(수오지심), 그 감정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아, 내 안에 이런 착한 마음이 있구나"라고 스스로 인정하고 바라봐 주는 것만으로도 씨앗에 물을 주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습니다.

2. 감정을 작은 행동으로 '이어주기'

감정을 알아차렸다면, 아주 작은 행동으로라도 연결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길고양이가 안쓰러웠다면 물 한 그릇이라도 놓아주고, 동료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면 "아까는 미안했어요"라고 짧은 메시지라도 보내보는 겁니다. 거창한 선행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내 안의 선한 감정을 실제 행동으로 옮겼을 때, 그 씨앗은 비로소 뿌리를 내리고 단단해지기 시작합니다. 감정과 행동이 연결되는 경험이 반복될수록 선한 본성은 더욱 강해집니다.

3. 꾸준함으로 선한 '습관' 만들기

근육을 키우려면 꾸준히 운동해야 하듯이, 우리의 선한 마음도 꾸준한 실천을 통해 강력해집니다. 하루에 한 번 감사 표현하기, 엘리베이터 문 열어주기 등 아주 사소하고 쉬운 목표부터 정해서 꾸준히 실천해 보십시오. 이러한 작은 성공 경험들이 쌓이면, 선한 행동을 하는 것이 어색한 일이 아니라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나의 일부, 즉 습관이 됩니다. 맹자는 이렇게 사단을 계속해서 넓혀나가면(확충, 擴充) 천하도 다스릴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꾸준한 실천을 강조했습니다.

결론

맹자가 말한 성선설과 사단은 "나는 착한 사람이야"라고 자만하라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선해질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존재야"라는 격려와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우리 안에는 불쌍히 여기고, 부끄러워하고, 양보하고, 옳고 그름을 아는 아름다운 마음의 씨앗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때로는 일상의 스트레스와 이기심이라는 먼지에 덮여 그 존재를 잊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늘 하루, 당신의 마음을 스쳐 지나가는 아주 작은 선한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작은 행동으로 옮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 순간이야말로 2000년도 더 된 맹자의 지혜가 당신의 삶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위대한 순간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