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시대, 똘레랑스(관용)를 다시 생각한다
요즘 인터넷이나 뉴스를 보면 마음이 불편해질 때가 많지 않으신가요? "왜 저렇게까지 남을 미워할까?", "나와 생각이 좀 다르다고 해서 저렇게까지 비난해야 할까?" 하는 생각에 잠기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렵고, 세상이 온통 싸움과 미움으로 가득 찬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미움과 분노가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는 '똘레랑스(tolerance)'라는 조금은 낯선 단어를 다시 꺼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말로는 '관용'이라고 불리는 이것이 도대체 무엇이고, 왜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지 아주 쉬운 이야기로 풀어보겠습니다.

똘레랑스, 그게 도대체 뭔가요?
똘레랑스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무조건 참고, 싫어도 좋은 척하는 것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똘레랑스의 진짜 의미는 그것과 조금 다릅니다. 우리 사회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아주 중요한 약속과도 같습니다.
1. 나와 다름을 '참아주는' 것이 아닙니다
똘레랑스는 싫어하는 음식을 억지로 먹으며 버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 말고도 수천 가지의 다른 음식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나는 딸기 맛 아이스크림을 가장 좋아하지만, 내 친구는 민트 초코 맛을 가장 좋아할 수 있습니다. 이때 "민트 초코는 맛이 이상해!"라고 비난하는 대신, "아, 너는 그 맛을 좋아하는구나"라고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 바로 똘레랑스의 시작입니다. 각자의 입맛이 다르듯, 생각과 가치관도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입니다.
2. 무조건 동의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똘레랑스는 모든 의견에 "네 말이 다 맞아"라고 동의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옳지 않거나 해로운 생각까지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뜻은 더더욱 아닙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사람을 속여서 돈을 버는 것은 똑똑한 일이야"라고 말한다면, 그 생각에 동의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나는 그 생각은 위험하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해"라고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다만, 그 의견을 가졌다는 이유로 친구라는 존재 자체를 미워하거나 인격을 모독하지 않고, 생각의 차이에 대해 대화하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3. '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자동차를 운전할 때 신호등을 지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가 가고 싶을 때 가고 멈추고 싶을 때 멈추면 당장은 편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도로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아무도 목적지에 갈 수 없을 것입니다. 똘레랑스는 우리 사회의 '신호등'과 같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부딪치지 않고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 서로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약속인 셈입니다. 이 약속이 있을 때 우리 사회는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왜 지금, 똘레랑스가 중요할까요?
과거에도 사람들은 서로 다투고 미워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똘레랑스를 더욱 강조하는 데에는 몇 가지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환경이 혐오와 갈등을 더욱 쉽게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1. 인터넷이 만든 '확증편향'의 함정
혹시 인터넷으로 무언가를 검색했을 때, 계속해서 비슷한 내용의 영상이나 글만 추천받은 경험이 있으신가요? 이것을 '확증편향'이라고 부르는데, 자신의 생각이나 믿음을 확인시켜주는 정보만 보려는 경향을 말합니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를 계속 보여주며 우리를 생각의 울타리 안에 가둡니다. 이 울타리 안에서는 내 생각이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지고, 울타리 밖의 다른 생각들은 틀리거나 이상한 것으로 여기기 쉬워집니다. 결국 다른 의견에 귀를 닫고 쉽게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다름'이 '틀림'이 되는 세상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단지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낙인찍는 분위기가 강해졌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퇴근 후에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기는 반면, 어떤 사람은 집에서 조용히 휴식하는 것을 선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생활 방식의 '차이'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저 사람은 사회성이 부족하다" 또는 "인생을 즐길 줄 모른다"와 같이 어느 한쪽이 틀렸다고 비난하기 시작하면 갈등이 생겨납니다. 작은 다름조차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는 모두를 피곤하게 만들 뿐입니다.
3. 혐오가 돈이 되는 비극
안타깝게도 누군가를 공격하고 미워하는 자극적인 콘텐츠는 더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기 쉽습니다. 어떤 유튜버는 특정 집단을 비난하는 영상을 만들어 수만, 수십만 조회수를 올리고 큰 수익을 얻기도 합니다. 이처럼 혐오와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 돈이 되는 구조 속에서, 사람들은 더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말을 쏟아냅니다. 이러한 '혐오 비즈니스'는 우리 사회 전체에 미움이라는 독을 퍼뜨리고,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 독에 중독되게 만듭니다.
일상에서 똘레랑스를 실천하는 작은 방법
똘레랑스가 중요하다고 해서 당장 세상을 바꾸는 거창한 일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말에서 시작되는 아주 작은 습관의 변화만으로도 충분합니다.
1. '왜?'라고 묻기 전에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기
나와 전혀 다른 의견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지?"라며 비난부터 하기 전에 잠시 멈춰보세요. 그리고 "아, 저 사람은 나와 다른 경험을 했나 보다. 저런 상황에서는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한 번쯤 생각의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나와 다른 관점이 존재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불필요한 감정 소모와 갈등을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2. 내 생각의 '설명서'를 만들어보기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노력만큼이나 내 생각을 제대로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누군가 "당신은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라고 물었을 때, 감정적인 비난이 아닌 차분한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보는 것입니다. "나는 이러이러한 경험과 이유 때문에 이렇게 생각해"라고 내 생각의 설명서를 만들다 보면, 내 생각의 뿌리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이는 다른 사람 역시 그들만의 '생각의 설명서'를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는 바탕이 됩니다.
3. 안전한 경계선 지키기
똘레랑스는 폭력이나 명백한 범죄, 다른 사람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행동까지 용납하라는 의미가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생각의 다름'과 '해로운 행동'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선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특정 인종이나 출신에 대한 편견을 표현하는 것은 혐오 발언이며, 이는 존중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관용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건강한 경계선 안에서 발휘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를 지키는 중요한 원칙입니다.
결론
혐오의 시대 속에서 똘레랑스, 즉 관용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이상적인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똘레랑스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선택 사항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무너지지 않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필수 생존 기술에 가깝습니다. 나와 다른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고 밀어내는 사회에는 결국 패배자만 남게 됩니다. 오늘부터라도 나와 다른 의견을 마주했을 때, 비난의 화살을 쏘기 전에 잠시 멈춰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 작은 멈춤의 순간들이 모여 우리 사회를 조금 더 숨 쉴 만한 곳으로 만들어 줄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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